유라시아 엔 드림 젖은 손으로부터

젖은 손으로부터

ⓒ 영

 

어째서 이러고 있는 거지.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비명 같은 애원을 셀 수도 없이 내질렀지만 다시금 유라시아 엔은 날카롭게 이를 세워 다연의 목덜미를 짓씹었다. 그 손으로 계속해서 다연의 맞붙은 허벅지 틈을 파고들었다. 어쩔 줄 모르고 오므라든 다리 사이를 벌려 내는 손길은 이미 여러 번 반복되었다. 몸을 조금 더 안쪽으로 자리 잡은 후 다연이 아예 허벅지를 맞붙이지 못하게 했다. 다연이 몸을 바르작거리며 폭력적으로 온몸을 짓누르는 쾌감에서 벗어나고자 다리를 다시금 오므리려 해도 다리 사이로 자리 잡은 유라시아 엔의 옆구리로만 허벅지를 비비적거리는 꼴이 되었다. 엔, 제발……. 애원조의 음성이 속수무책으로 입술을 비집고 쏟아져도 유라시아 엔은 사정을 봐주지 않았다. 이미 다연의 눈가는 온통 눈물로 짓물러 있었다. 다연의 둔부와 맞붙어 있는 카펫은 진즉에 다연이 흘린 체액으로 질척하도록 흠뻑 젖어 있었다.

 

✞

 

이제는 다연에게 제법 익숙해진 파열음이었다. 식기가 깨지는 소리, 깨지지는 못하고 둔탁한 무언가가 벽에 부딪혀 바닥으로 추락해 나뒹구는 소리, 총체적으로 마음이 부서지는 소리 같은 것들이. 그럼에도 유라시아 엔이 혼자 유폐되어 있을 공간으로 향하는 걸음은 늘 초조함이 뒤섞인 채 이리저리 이가 빠진 그릇처럼 바닥 위로 헤매듯 내딛게 되었다. 어쩔 수 없었다. 문으로 닫혀 있지도 않고, 창문을 열려면 언제든 열 수 있고, 그래서 나가려면 언제든 나갈 수 있고 벗어나려면 언제든 벗어날 수 있는데도 유라시아 엔은 꼭 그 공간에 붙박인 것처럼, 마치 그곳이 미궁인 것처럼, 스스로를 감금시키고 유폐시켜 놓았다. 다연이 그 공간 안으로 침범해도 유라시아 엔의 초점은 대번에 다연에게로 맞지 않았다. 실내용 슬리퍼도 신을 새 없었던 맨발이 갖은 조각들을 밟으며 유라시아 엔에게로 향했다. 아무렇게나 긁혀도 아프지 않았다. 차라리 피부에 남는 상흔이 나았다. 아무리 상흔이 새겨지면서 아릿한 통증이 올라와도 그러한 통증은 얼마든 견딜 수 있었다. 정말로, 하나도 아프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영혼이라든지 마음에 남는 상흔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물리적인 통증 하나 동반되지 않아 긁힌 줄도 모르고 긁혀 어느 순간 부서져 버리는 것으로 알아차리게 하는 그런 상흔들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도무지…….

 

더는 주변에 내던질 것이 없어 유라시아 엔의 손이 허공에서 참지 못하겠다는 듯 파들거리는 떨림을 내보이고 있었다. 내 손은 전부 망가뜨리기만 해. 내 손이 닿으면 전부 망가져.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목전으로 다가온 다연을 필사적으로 모르는 척하는 듯했다. 모르는 척하는 줄도 모르는 채로, 지극히 무의식적인 모르는 척이었다. 다연은 허공에서 파들거리는 유라시아 엔의 손을 맞잡아 유라시아 엔을 자신의 품으로 당기면서 언젠가 유라시아 엔이 했던 말을 떠올렸다. 이러다 내가 미쳐서, 정말로 미쳐 버려서, 너까지 망가뜨리게 되면 어떡하지? 너만큼은 절대로 망가뜨리고 싶지 않은데, 내가 정말로 미쳐 버리게 된다면……. 그 말을 할 때 유라시아 엔은 아무런 표정도 짓고 있지 않았지만 다연은 어쩐지 유라시아 엔이 울고 있다고 생각했다. 우는 법조차 자기 것이 아니라고 스스로 잃어버린 유라시아 엔을 대신해서, 다연은, 자신만큼은 유라시아 엔의 울음을 기억해야겠다고 몰래 다짐했었다.

 

내가 이러는 거 지겹지.

 

들숨도, 날숨도 죄다 엉켜 호흡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던 유라시아 엔이 다연의 품에서 겨우 가쁜 숨을 정돈시키고 꺼낸 첫말은 이랬다. 더는 숨을 삼킬 수 없을 만큼 흉곽이 부풀고, 짧게 틈을 끊어 가며 겨우겨우 가득 찬 숨을 내뱉으면서 헐떡거리던 것이 직전이었다. 자꾸만 달아나는 숨을 어떻게든 붙잡고, 쉬어도 쉬어도 쉬어지지 않는 것 같은 숨을 끈질기게 쫓아가던 것이. 언제 그렇게 헐떡였냐는 듯 다연의 품 안에서 가느다랗게 흐르는 말은 꼭 희박한 숨소리처럼 고저조차 옅었다. 어린 짐승처럼 한껏 부풀었다가 급격하게 푹 꺼지기를 반복하던 등을 연신 쓸어 주던 다연의 손이 잠시 멈추었다. 그리고 그 일순의 망설임을 상쇄하기라도 하려는 듯 다시금 쓰다듬을 이어 나가는 손에는 더 이상 망설임이 없었다. 하나도 지겹지 않아, 엔. 이런 건 얼마든 괜찮아. 네가 조금이라도 덜 힘들 수 있다면 뭐든 상관없어. 다연은 자신의 품에서 몸을 웅크리고 있는 유라시아 엔을 더욱 품으로 가까이 끌어안으며 바짝 붙은 귓전으로 속삭이듯 말해 주었다. 유라시아 엔을 어르려거나 달래려는 의도는 없었다. 그런 의도를 가지고 한 말이 아니었다. 다연은 오로지 유라시아 엔에게 하고 싶은 말을 해 줄 뿐이었다. 그런 말에 의도라는 것이 있을 리 만무했다.

 

그리고 그 말을 들은 유라시아 엔은 웃었다. 안도된 웃음도, 진정된 웃음도 아니었다. 어디인가 바람이 빠지는 듯한 웃음 같기도 했고, 실성한 것이 아닌데 실성하고 싶은 듯한 웃음 같기도 했다. 그런 웃음을 멈추지 않고 유라시아 엔은 다연의 품에서 벗어났다. 손바닥으로 다연의 가슴팍을 밀어내는 손길은 거세지 않았지만 안겨 있던 품에서 벗어나기에는 충분한 제스처였다. 다연은 의아한 내색을 감추지 않으며 유라시아 엔을 바라보았다. 표정을 지운 얼굴은 여러모로 엉망이었지만 감정만큼은 읽을 수 없었다.

 

지겹잖아.

 

…….

 

도대체 언제 또 미칠지, 언제까지 미칠지, 그런 걸 가늠하다 보면 지겨울 수밖에 없잖아.

 

…….

 

그리고 언젠가는 나를 버릴 거면서.

 

…….

 

아니야?

 

다연과 시선을 맞추는 유라시아 엔의 눈의 초점이 드디어 어긋나 있지 않았지만 다연은 그 눈 속에 자신이 부재해 있는 것 같다고 느꼈다. 유라시아 엔의 말에 어떤 대답을 해야 될지 알 수 없었다. 그 어조가 이미 확신에 차 있기도 했고, 그래서 어떤 말을 해도 유라시아 엔의 눈 속에 스스로가 자리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유라시아 엔은 다연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그 말만큼은 명백히 다연을 향하고 있음이 확실했다. 유라시아 엔에게서 처음 듣는 말이었다. 다연은 공연히 아랫입술만 짓씹으며 유라시아 엔의 말에서 떠오르는 기억들을 다시, 평소처럼 수면 아래로 가라앉히려고 노력했다. 노력이 무색하게 다연이 어떻게 손을 쓸 수도 없이 한번 둑이 터진 기억은 순식간에 범람해 다연의 머릿속을 헤집어 놓았다.

 

탑을 오르면서 만났던 사람들. 동료가 되고, 친구가 되었던 그 사람들. 어쩌면 가족 같다고도 생각했다. 서로의 안위를 누구보다 신경 쓰고, 끼니를 같이 챙기고, 돌아가면서 잠자리를 지켜 주던. 피가 섞이지 않아도 가족일 수 있었다. 우리 모두 다 같이 살아남자던 약속이 그토록 절박할 수 없었다. 간절히 바랐다. 그리고 모두 죽었다. 오로지 다연만 이 생에 남겨 둔 채, 다연 홀로 생존하게 두고, 모두가. 유일한 생존자라는 사실은 어쩌면 서글픈 치욕이었다. 다연이 강해서 살아남은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다연은 가장 약했다. 힘도, 기술도, 능력도, 전부. 그런데 그런 다연이 살아남았다는 것은, 그 생존조차도 다연의 의지가 아니었다는 말과 다름 아니었다. 다연은 그렇게 살아남았기에 버려졌다. 그들이 다연을 버린 것은 당연히 아니었지만, 때로는 홀로 살아남았다는 사실만으로도 이 생에 버려질 수 있었다. 내가 조금만 더 강했더라면. 내가 그 사람들을 지킬 힘이 있었더라면. 내가 그 사람들의 발목을 잡지 않았더라면. 그랬다면 이렇게 버려질 일 없었을 텐데. 죽음만큼 완벽한 유기는 없었다.

 

파열음에 어느 정도 익숙해지면서도 다연은 단 한 번도 유라시아 엔 앞에서 상처 입지 않았다. 그것은 유라시아 엔이 다연에게 상처를 주지 않아서가 아니라, 다연이 스스로 상처받지 않기를 선택했기 때문이었다. 무엇이든 괜찮았다. 유라시아 엔이 다시 정상 궤도에 천착할 수 있도록 안간힘을 다할 뿐이었다. 그것만이 중요했다. 그랬던 다연은 처음으로 유라시아 엔 앞에서 눈시울을 붉혔다. 자의가 아니었다. 다연이 잡았던 손들이 차게 식어 갔던 그 체온이 자꾸만 떨어지지 않아서, 마치 그 손을 붙들고 몰래 울음을 축였던 순간으로 되돌아간 것만 같아서…….

 

내가 너를 버려?

 

…….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가 있어.

 

…….

 

오히려 내가 약해서,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해서 나는 늘 혼자 남겨졌어.

 

…….

 

엔만큼은, 적어도 엔만큼은 내가 엔을 버린다는 가정조차 하지 말아야지…….

 

다연은 어떻게든 얼굴 근육을 일그러뜨려 가며 울음을 참았다. 하지만 말을 마치며 아랫입술을 짓씹는 순간 방울진 울음이 한쪽 뺨을 타고 떨어져 내렸다. 살아 있는 것의 생생한 뜨거움이 뺨을 가로지르자 온 얼굴이 젖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그를 내려다보던 유라시아 엔은 물기가 후두둑 낙하하는 것에서 무언가 끊어지는 기분을 느꼈고, 동시에 엉망으로 엉켜 드는 기분 또한 느꼈다. 반사적으로 눈을 깜빡이는 순간 러그 위로 다연의 가느다란 몸을 밀어 눕히고 있었다. 깨어진 것들의 파편이 튀지 않은 곳을 고른 것은 유라시아 엔이 발휘할 수 있는 최선이자 마지막 이성이었다.

 

✞

 

목덜미의 여린 살갗을 거의 물어뜯듯 이를 박아 넣자 다연은 가슴팍을 들썩이며 흐느꼈다. 아파, 아파, 엔……. 유라시아 엔의 어깨를 겨우 붙든 손은 어쩔 줄 모른 채 떨림을 감추지 못했다. 살성이 무르고 약한 탓에 쉽게 남은 생채기를 입술로 덮고 혀로 축이면 비릿한 쇠 맛이 느껴졌다. 아프다는 애원이 연신 쏟아져도 유라시아 엔은 갈증과 허기를 채우듯, 그러지 않으면 견딜 수 없다는 듯 닿을 수 있는 모든 곳을 물고 빨았다. 이를 세운 횟수를 셀 수 없었다. 어떻게 하면 너를 온전히 가질 수 있지? 어째서 너를 완전하게 내 것으로 만들 수 없지? 내가 너를 영영 버릴 수 없고, 네가 나를 영영 버릴 수 없도록……. 유라시아 엔이 다연의 피부에서 입술을 떼지 않은 채로 내린 손길 몇 번으로 다연은 금세 나신이 되었다.

 

유라시아 엔이 다연의 위로 올라탔던 몸을 잠시 무르자 다연은 그제야 다급하게 숨을 들이켰다. 계속해서 헛숨만 들이키던 호흡기로, 폐부로 처음으로 제대로 된 공기가 들어찼다. 다연이 가쁘게 가슴팍을 오르내리며 흩어진 숨을 정돈할 틈도 주지 않고 유라시아 엔은 딱 붙어 오므라져 있던 다연의 양다리를 넓게 벌려 내고는 그 사이로 자리했다. 유라시아 엔이 잇새로 씨근덕대는 거친 호흡을 흘리자 다연은 등허리로 오소소 소름이 돋아 올라오는 것이 느껴졌다. 그 순간 유라시아 엔과 눈이 마주쳤다. 한 번도 본 적 없던 눈동자였다. 그것은 오로지 포식자의 눈동자였다.

 

다리 사이로 손이 파고들었을 때 다연은 그제야 온몸이 빳빳하게 굳었다. 유라시아 엔이 민감한 표피를 몇 번 문질러 주자 굳은 몸과는 별개로 금방 밑이 물기를 머금는 것이 다연에게도 느껴졌다. 모를 수가 없었다. 당혹감과 부끄러움 사이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고 다연은 연신 엔, 엔…… 하며 엔의 이름만을 불러 댔다. 젖었네. 짧게 읊조리는 유라시아 엔의 음성이 유독 낮게 깔렸다. 한 번도 손을 타지 않은 속살로 유라시아 엔의 손가락이 가르고 파고드는 순간 다연은 절로 발끝이 굽었다. 옆얼굴을 타고 방울방울 떨어지는 눈물 역시 다연의 의지가 아니었다. 좁은 안쪽을 누르고 쓸어 주는 손끝의 단단함에 다연은 아랫배가 저릿했다. 이런 거 몰라. 이런 거, 이런 거 정말 몰라……. 질척거리고 찌걱거리는 물소리와 함께 안쪽을 헤집으며 문대는 손길이 이어지자 다연은 입술을 씹어 무는 방법조차 잊어버렸다. 스스로의 것 같지 않은 새된 소리가 둥글게 벌어진 입술 틈에서 새어 나왔다. 유라시아 엔의 손조차 몇 번 타지 않았는데 머릿속이 새하얗게 번지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익숙하지 않은 쾌감에 자꾸만 뒤채는 허리가 성에 차지 않았는지 유라시아 엔이 다연의 골반을 꽉 잡아 붙들며 움직이지 못하도록 고정시켰다.

 

무엇이라도 붙들어야 조금이라도 견딜 수 있을 것 같아 다연은 손에 쥐이지도 않는 러그를 붙잡으려 애썼다. 그 모습을 전부 빼곡히 눈 안으로 집요하게 담으면서도 유라시아 엔은 다연의 사정을 봐줄 생각이 없었다. 젖은 소리, 높다란 신음 소리만이 공간을 채우자 다연은 수치감에 발끝으로 러그를 주욱 밀었다. 나신으로 잔뜩 흐트러져 있는 자신의 모습과는 대조적으로 유라시아 엔은 단정한 차림 그대로로 그 어떤 흐트러짐도 없었다. 짓무른 눈가를 겨우 깜빡이며 다연은 다 풀린 혀를 어떻게든 제대로 움직이려 했다.

 

엔, 흐읏, 엔……. 으으응, 나, 얼굴, 얼굴 보고……. 나 좀, 흐윽…… 안아 줘…….

 

그 애원에도 유라시아 엔은 손속을 늦추지 않았지만 몸을 아래로 숙여 다연을 품 안으로 가두었다. 그리고 온통 젖어 엉망인 뺨으로 가벼운 입맞춤을 쉴 새 없이 내렸다. 그것만으로도 다연은 마음속에서부터 안도감을 느꼈다. 도통 긴장을 풀지 못하던 몸이 자연스레 이완되기까지 했다. 저릿한 쾌감이 발끝을 타고 전신을 휘감았다. 그마안, 좋아, 더는 안 돼, 제발…… 앞뒤가 맞지 않는 말이 머리를 거치지 않고 튀어나왔다. 다연 스스로도 무엇을 바라는지 알 수 없었다. 유라시아 엔의 품에 안겨 있다는 사실만으로 수치감은 모조리 휘발된 채 활짝 벌어진 다리를 오므릴 생각도 더는 하지 못했다.

 

시간 감각조차 고장이 나 얼마나 이러고 있었는지 가늠이 안 될 무렵, 유라시아 엔이 다연의 귓가로 사랑한다는 말만 되뇌는 기억을 마지막으로 다연은 까무룩 정신을 암전시켰다. 역치를 한참 웃도는 쾌감을 더는 감당할 수 없었다.

 

✞

 

다연이 눈을 뜬 것은 몸에 익숙한 푹신한 감촉과 함께였다. 유라시아 엔은 먼저 눈을 뜨고도 다연을 깨우고 싶지 않았다는 듯 다연의 머리카락을 조심스럽게 매만지고 있을 뿐이었다. 눈을 제대로 뜨자 눈가가 부어 있다는 것이 느껴질 만큼 눈꺼풀이 무거웠다. 느릿하게 눈을 깜빡이는 다연과 시선이 마주친 유라시아 엔의 얼굴이 순식간에 여러 감정으로 물들었다. 당혹스러움. 혹은 죄책감. 기이한 충족감과 포만감. 혹은 유라시아 엔조차 정의할 수 없는 여타의……. 다연이 습관처럼 유라시아 엔을 부르려 입을 여는 순간 성대가 유리 조각에라도 긁힌 것처럼 까끌거렸다. 작게 인상을 쓰는 다연의 상태를 기민하게 파악한 유라시아 엔이 미리 가져다 둔 것인지 물이 담긴 유리컵을 다연에게 건넸다. 투명하고, 깨끗하고, 깨지지 않은 온전한 유리컵. 받아 드는 손이 작게 떨리자 유라시아 엔은 컵을 제대로 그 손에 쥐여 주는 대신 다연의 상반신을 일으켜 자신의 품에 기대게 하고는 직접 컵을 입에 대 주었다. 느릿하게 입안을 적시며 들어오는 물을 받아 마시는 중에도 다연은 유리컵에서 시선을 뗄 수 없었다. 마른 등으로 맞닿아 오는 유라시아 엔의 심박이 어쩐지 낯설었고, 여전히 익숙했다. 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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